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September 30, 2025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나는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who-am-i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약 4개월 전, 6월에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출발했다.
이번 이직은 단순한 회사 이동이 아니라, 내 하루와 커리어, 그리고 생각의 흐름까지 흔드는 변화였다.

고민의 풍경

🏠 재택근무, 자유와 공허함의 공존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달콤함.
출퇴근의 피로가 사라지고, 집밥을 먹을 수 있다는 소소한 즐거움.
운동 시간을 확보하고, 요리 실력이 조금씩 늘어가는 것도 만족스럽다.

하지만 동시에, 고립감이라는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다.
팀원과 주고받던 스몰토크, 점심 식사 후 산책에서 느끼던 따사했던 햇살과 바람, 피곤할때 가끔씩 진행했던 핀볼 내기게임... 이 모든 사람들과의 작은 교류가 사라졌다.

오랜만에 밖에 나가도, 사람들의 표정과 걸음걸이가 낯설게 느껴진다.

하루가 희미하게 흘러간다.
기상, 근무, 운동, 다시 근무… 개인 시간과 일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마치 내가 흐릿하게 스며드는 하루 속을 걷는 기분이다.
효율은 얻었지만, 온기는 조금씩 줄어든 셈이다.

🌐 도메인의 변화, 속도와 안정성 사이

이전 회사에서는 B2B 환경 속에서 데이터의 정확성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신뢰가 곧 서비스의 생명력이었기에, 속도보다는 안정성을 우선시했다. (물론 그렇게 느린 서비스는 아니었다!)

지금은 B2C, 내가 맡은 건 투두리스트+캘린더 서비스다.
사용자는 빠른 반응을 기대한다.

또, 웹과 앱을 동시에 운영하는데도 이벤트 소켓 같은 실시간 동기화 장치가 없다 보니, polling으로 버티고 있다. 더 자주 polling을 할수록 리소스가 아깝게 느껴지고, 업데이트가 겹칠 때 데이터가 깨지진 않을까 불안감이 따라온다. “이게 정말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종종 고개를 든다.

가끔은 속도를 위해 자원을 과하게 쓰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설계와 접근방식에 의문이 들때가 많다.

효율과 안정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는, 보이지 않는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 AI 이후, 개발의 희열을 되돌아보다

지금 나는 AI 덕분에 복잡한 요구사항이 있더라도 혼자서라도 빠르게 앱을 개발 할 수 있다. 반복적인 구현은 AI가 대신하고, 나는 설계와 방향에만 집중한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버그 하나를 붙잡고 stack of flow나, github issue를 찾아가며 고민하던 내가 있었다.
스스로 답을 찾아낼 때 느꼈던 희열은, 지금은 조금 가벼워진 듯하다.

“AI가 아니었으면 혼자 개발 못했을 거야.”
이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마치 단순히 설계를 내리고 결과를 받아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효율은 높아졌지만, 성취의 무게는 조금 옅어진 기분이다.
개발자가 아니라, 설계를 외치는 사람. 내가 원했던 감각과는 조금 다른 자리다.

시선을 바꿔보기

📈 PM이라는 가능성

아이러니하게도, 공허함은 내 시선을 새로운 곳으로 이끌었다.
바로 Product Manager, PM이라는 역할이다.

PM은 단순히 일정과 요구를 조율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를 정의하고, 다양한 가능성 사이에서 최적의 선택을 찾고,팀을 설득하며 더 나은 길을 설계하는 사람.
단일한 답이 없는 상황에서, 그 과정을 이끌어가는 직군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를 끌어당긴다.

개발자일 때는 “어떻게 구현할까?”라는 질문이 중심이었다면, PM은 “무엇을, 왜 만들까?”라는 질문부터 시작한다.
하나의 질문만으로도 제품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내가 매력을 느끼는 PM의 순간들은 이렇다.

  • 문제 정의의 힘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으면 해결책은 늘 어긋난다. 가령 지금 내가 겪는 웹-앱 동기화의 polling 문제도, 단순히 ‘기술적 불편’으로 볼 수도 있지만, 사용자가 겪는 ‘데이터 일관성의 불안정’이라는 문제로 정의할 수도 있다. 같은 상황이지만 관점에 따라 풀어야 할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 데이터 기반의 판단

    PM은 감이 아니라 근거로 움직인다. 사용자가 실제로 어떤 지점에서 불편을 느끼는지, 어떤 흐름에서 이탈하는지를 수치와 데이터로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빠르게 만들자”가 아니라 “이 개선이 사용자 경험을 얼마나 높이는가”를 데이터로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 협업의 설계자

    혼자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오히려 PM은 개발자, 디자이너, 마케터, 운영자 등 여러 직군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각자의 언어를 이해하고, 공통된 목표로 모으는 일이 PM의 중요한 역량이다.

모든 문제를 동시에 풀 수는 없다. PM은 한정된 리소스 속에서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할 선택을 내려야 한다. 이 과정은 숫자와 논리의 영역이면서도, 동시에 감각과 결정의 영역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PM으로서 걸음을 떼진 않았지만, 이 역할이 지닌 매력은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개발’이라는 기술적 성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과정 전체’를 이끌어 나가고 싶다. 아마 그것이 내가 앞으로 찾고자 하는 진짜 효능감일지도 모른다.

⏳ 매너리즘일까, 전환점일까

지금의 고민이 직장인이라면 흔히 겪는 매너리즘 혹은 직장인 사춘기 일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 상담을 하다보니, 다들 369법칙이라며 3년 차, 6년 차, 9년 차 즈음 권태의 파도가 온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나는 단순히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한다.

매너리즘이든 전환점이든, 중요한 건 그 시간을 어떻게 마주하느냐이다.
그저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는 시간이라면 충분히 의미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 앞으로의 바람

지금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나에 대한 믿음인 것 같다.

새로운 도전을 택할 용기는 있지만, 그 선택을 스스로 믿는 마음은 아직 부족하다.

PM 관련 공부를 하며 흥미를 느끼지만, 여전히 두려움이 자리한다. 개발자로서 걸어온 길을 내려놓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형태로 확장하는 것일까.

답은 아직 모르지만, 지금 이 여정 속에서 나 자신을 믿고, 내가 진짜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임을 분명히 느낀다.


마무리하며

하루하루는 공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빠른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의 몰입과 성취다.

올해 하반기는 완벽한 답을 찾는 시기가 아닐 것이다.
대신 질문을 더 깊이 던지고, 그 속에서 나를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결국, 내가 찾는 효능감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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